우리나라 사법업무에서의 전자파일링(2)

   ― 현황과 전망, 그리고 한계

 <목  차>

 

             I. 전자파일링의 개념

             II. 기존의 도입사례  
                         
(이상 지난호)

          III. ECF가 가지는 한계

          IV. 전망

 

 

 

전원열 판사

(서울고등법원)

 

III. ECF가 가지는 한계

1. e-filing을 강제할 수 있는가? ― 일부 사건만의 e-filing에서 오는 어려움

  법원이 e-filing을 당사자들에게 강제한다면,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까? 우선 인터넷, 컴퓨터 등에 낯선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에 대하여 너무 차별적인 조치라는 반대가 있을 것이다.

  위 요소를 배제하고 본다면, 즉 소송의 양 당사자들이 컴퓨터에 친숙한 사람들이라면, 종이서류에 의한 절차진행을 금지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 문제는, 바꾸어 말하면, 소송당사자에게 절차진행의 방법에 관한 선택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 소송법이 각 소송단계별로 여러 가지 세세한 절차진행상의 규율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법률상 규율이 그 각 절차상황에서의 당사자의 선택을 제한함을 이유로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가령 소액사건에서만 구술제소가 가능하고 그 외의 민사본안사건에서는 구술제소는 불가능하지만, 그러한 구술제소 불가능을 두고 위헌이라고 하는 비판은 없다. 소액사건에서도 구술제소를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두고 서민의 편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는 비판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를 위헌이라고 하는 주장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글을 타이핑하고 업로드 하는 것이 종이에 글을 쓰는 것만큼 보편적인 일이 된다면, 전자 파일링을 강제한다고 해도 위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각국의 문자해독률이 선진국이라도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들 나라에서도 모두 문자에 의한, 종이를 이용한 소제기를 원칙으로 정해 두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모든 국민이 인터넷을 친숙하게 사용하고 컴퓨터의 이용을 할 줄 아는 정도까지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상당수, 가령 70-80%가 그러하다면 전자파일링을 강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1)

  이미 미국에서는 전자파일링이 주는 효용이 아주 큰 일부 사건의 경우에는 전자파일링을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한 바가 있다. 석면에 대한 장기간 노출로 신체상해를 입은 다수 원고들이 제기한 소에 대하여, 전력재판매(electric power resale) 회사들의 담합여부를 다룬 다수당사자 사건에 관한 것이 그 예이다.2) 다수 원고가 제출하는 많은 양의 관련문서들과 증거들에 대하여 법원이 한정된 인적, 물적 자원으로 소송을 원활히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여, 미국 법원은 그러한 전자파일링 명령을 하였다고 보인다.3)

 

  그러나 현재 일반 국민의 컴퓨터 및 인터넷의 사용 수준을 볼 때, 지금 단계에서 일반 사건에 관하여 전자파일링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잘못으로 보이고, 만약 단행된다면 위헌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전자파일링은 당사자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고, 그러한 경우의 업무처리의 복잡성은 (1) 일부 사건은 종이 파일링, 다른 사건은 e-filing으로 처리될 경우의 불편, (2) 한 사건에서 일방 당사자는 e-filing, 다른 당사자는 종이 파일링의 할 경우의 불편으로 일단 나누어 볼 수 있다.

  (1)의 경우만 보더라도 법원 측의 불편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ECF에 관한 미국의 guidebook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4) 더 나아가서, 위 (2)의 경우에 법원 및 당사자들이 겪을 불편은 더욱 클 것이라고 예상된다.5)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본다.

 

2. 쌍방구조에서 오는 어려움

  먼저 소송은 근본적으로 쌍방 당사자 구조(adversary system)을 전제로 한다. 원, 피고 중 일방은 e-filing을 원하고, 타방은 종이 파일링을 원하여 그렇게 진행될 경우의 사건처리의 비효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법원 직원은 하나의 사건에 있어서 접수된 각 문건이 일부는 전자적으로, 일부는 종이 형태로 존재하므로, 어떤 것을 수작업으로 보내는 처리를 해야 할 것인지, 혼란을 겪을 것이고, 법관은 하나의 사건에 관한 검토를 하면서, 한눈으로는 종이 사건기록을, 다른 한 눈으로는 PC 모니터를 왔다갔다 하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은 감당하기 어렵다.

3. 당사자의 비협조에서 오는 어려움

  또한 소송의 본질상 피고는 원고의 청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원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이 지연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점도 전자파일링 장애요소이다. 명도청구소송 등 두드러지는 사안을 제외하고라도 피고로서는 법원의 빠른 판단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전자파일링이 아무리 효율적일지라도, 그리고 피고가 아무리 컴퓨터에 친숙하더라도, 피고는 ECF를 통한 효율적인 진행에 대하여 협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물론 피고 측에 변호사 대리인이 있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피고 측의 비협조 문제가 조금 덜어지기는 할 것이다. 변호사들이 자신의 업무 편의상 ECF를 이용하려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6)

 

  위 2.와 3.에서 설명한 요소들은 법원의 소송에 있어서 특유한 것이고, 다른 사무업무의 전자파일링화 과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국세적의 세무업무, 각종 인허가 업무 등 행정기관의 업무가 가지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민원인 대 관청의 1:1 구조이므로, ―기술적인 장애를 제외하고― 위와 같은 측면의 전자파일링 장애요소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말부터 ECF를 여러 방향으로 시도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부 파산법원이나 소액법원의 업무를 제외하고, 본격적인 본안소송에서는 ECF가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7) 법원 재판의 ECF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IV. 전망

1. 본안소송에 대한 전면적인 도입에 관하여

  이상과 같이, 민원인 대 관청의 1:1 구조인 행정기관의 사무처리와 달리, 양 당사자 대립구조를 가진 법원의 소송에 있어서는, 전자파일링 여부를 당사자의 선택에 맡겨 두어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본안사건에 관하여 전면적으로 전자파일링을 도입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현재로서 보다 손쉽게 전자파일링을 도입할 분야는 행정기관 사무처리와 유사한, 즉 신청인 : 법원의 1:1 구조를 가진 분야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관념적으로 쌍방 당사자 구조이기는 하지만, 일방 당사자가 실제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건 유형, 즉 지급명령절차(채무자 측이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면 이 절차에서 벗어나 버린다), 또는 민사사건 중 자백간주 사건의 절차 등이 보다 손쉽게 전자파일링을 도입할 수 있는 분야이다.

미국의 10여년에 걸친 법원 전자파일링 실험을 지켜보고 있던 영국 법원은 2002년 봄에, 인터넷을 통한 소제기라는 전자파일링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는데,8) 미국의 다른 전자파일링 시범사업들에 비하여 가장 시기적으로 늦은 것이어서 기술적으로는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보다 복잡한 시스템의 처리가 가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술적, 구조적으로 가장 단순한 자백간주사건의 처리만 하는 시스템을 채택하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일반 민사사건의 전자화는 지지부진한데 비하여, 파산법원은 비교적 전자파일링에 성공하고 있다.9) 그 이유는 바로, 파산법원의 업무처리구조가 1:1 구조에 가까운 것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법원의 경우에도 ECF를 도입하여 비용/효과 측면에서도 가장 유리하고, 또한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는 분야는 일방 내지 준일방 구조를 가진 업무분야가 될 것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급명령절차라고 판단된다.

  지급명령절차에 있어서의 ECF 도입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검토는 별지 보고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특허법원 소송

  쌍방 당사자 대립구조가 주는 어려움이 위와 같이 크지만, 그래도 현재의 단계에서 그나마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특허법원일 것이다.10) 왜냐 하면, (1) 변호사 선임률이 높아서, 컴퓨터에 친숙하지 않은 서민들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비난이 거의 없으며, (2) 현재의 특허법원 소송 중 27%를 차지하는 결정계 사건은 그 피고가 특허청 측이므로 피고가 개인일 경우 있을 수 있는, ECF에 대한 비협조의 문제가 적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당사자계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도 대부분 변호사/변리사 대리인이 선임되므로, 전자파일링 사용의 기피라는 문제가 크게 대두될 우려가 적다.

  하지만, 위와 같이 실시의 효율성이 높다는 점 외에 일반적으로 본안소송에서 ECF를 실시할 경우에 고려되어야 할 여러 법률적, 기술적 요소들은 거의 다 특허법원 소송의 ECF에서도 존재한다고 보아도 좋다.

특허법원 소송에 있어서의 ECF 도입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검토 역시, 별지 보고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3. 마무리하면서

  이상에서 우리나라 법원에서의 전자파일링 현황을 개관한 후에 실제 ECF 적용에 있어서의 한계를 중심으로 검토를 하였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에서 나온 ECF 관련 보고서들은 모두 ECF의 장점만을 알리는 쪽이었고, ECF의 구체적인 실시에 있어서의 한계, 그러한 제약의 이유에 관한 검토에 대한 보고서는 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 보고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좀 더 활발히 ECF에 대한 논박이 오고가서 구체적인 장단점들이 모두 현출되고, 그리하여 실제 실시에 있어서의 시행착오가 최소화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주)

1) 싱가포르에서는 도시국가라는 점, 국민 대다수의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충분히 이용하여, 전체의 소송절차 중 상당 부분에 있어서 전자파일링을 강제하였다고 한다.

2) California San Diego County Superior Court에서 진행한 Asbestos Litigation, Wholesale Electricity Antitrust Cases.

3) 우리나라에서의 ECF 논의가 주로 단순반복적인 작업을 전산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깔고 있는 것에 반하여, 영미에서는 ―위와 같은 방향의 ECF 실험도 많지만― 오히려 종종 너무 복잡하여 종이로 사건기록을 편철하기가 곤란한 사건(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노태우, 전두환 비자금 사건 등이 해당할 것이다)에서 간편하게 CD 한 두장에(혹은 서버에 저장되는 전자파일로) 각 당사자의 주장 및 증거를 모두 넣어서 편리하게 이용하자는 쪽의 논의들이 보인다. 호주에서도, 1999년 및 2000년에 그와 같은 방대한 기록의 사건을 전자파일링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향의 논의는, 직접심리주의가 살아 있고 사실심리가 제1심에서 끝나는 영미법계에서 보다 지지자를 확보하기가 쉬울 것이다.

4) www.ncsc.dni.us/NCSC/TIS/TIS99/electr99/Guidebook/HTML/EfileWest.htm.  "E-filing 프로젝트의 테스트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문서의 이중보존(종이 및 디지털)이 필수적이지만, 법원이 양 시스템을 병행해서 사용하는 한 기술의 장점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5) 그런데 필자와 e-mail 교신을 한 The U.S. District Court for Northern Ohio 의 Peter Economus 판사는 위 (1)에 의한 불편은 전혀 없으며, 위 (2)의 경우에도 실제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자기 법원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한 약간의 과장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지만, 미국 사실심의 재판형태와 우리와 달리 기록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위 법원의 경우 현재 소 제기 중 90%가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위 법원은 1996년 1월 maritime asbestos 사건을 미국 최초로 전자파일링으로 진행한 이래 e-filing에 관한 많은 실시경험과 관내 변호사에 대한 장기간의 교육경험을 가지고 있는 법원이다.

6) The U.S. District Court for Northern Ohio 법원에 대하여 e-filing을 이용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제출한 서면의 제출시간 통계를 보면, 35%가 법원업무시간(9 a.m. - 4 a.m.) 외의 시간에 전자적으로 서면을 제출하고 있다.

7) 미국 연방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CM/ECF 시스템을 현재 적용하고 있는 법원을 보면, 연방지방법원은 전국에 걸쳐 9개 밖에 되지 않지만, 파산법원은 전국적으로 30개 이상 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8) 영국의 MCOL(Money Claim On-Line) 시스템은 우리의 법원행정처에 대응하는 기관인 영국의 Lord Chancellor's Department에서 주도하였다. 런던 북부의 Northampton County Court가 시범법원으로 지정되어 England 및 Wales의 대부분의 금전청구(다만, 소가 10만 파운드 이상 사건 제외, 인신사고 손해배상 사건 제외)에 대한 인터넷 제소를 접수하여 처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www.courtservice.gov.uk/mcol 을 참조할 것.

9) 위 각주 31)참조. 자세한 전자파일링 이용실태는 장준현 판사의 “미국의 전자파일링 현황” 참조.

10) 행정법원도 그 성격상 특허법원과 약간의 유사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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