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간의                    

       공생관계에 대한 단상

 

 

 

 

 

 

 

 

 

 

박연주 판사

(서울지방법원)

 

 1. 들어가며

  사법정보화연구회 웹진에 실을 가벼운 단상을 한 편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컴퓨터라면 판결문작성과 e-mail, 인터넷검색 외에는 이용하지 않는 제가 웹진과 같은 전문지에 실을 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실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많지 않은지라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글을 쓸 자신은 없고, 다만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 느낀 생각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2.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

 

  저의 법원에서의 하루 일과는 컴퓨터를 켜는 데서 시작하여 끄는 데서 끝나곤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일단 컴퓨터를 켜고 코트넷에 접속하여 메일 및 게시판 검색을 한 후 야후 뉴스를 훑어보는 것으로 신문을 읽는 것을 대체하고 기록검토 및 판결작성 등의 업무를 보게 되는데, 판결문작성은 물론 종합법률정보나 문서관리시스템을 이용한 자료검색 등 모든 업무가 컴퓨터를 이용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판결작성 도중 전기가 나가서 컴퓨터가 갑자기 꺼진 후 1시간 정도 사용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컴퓨터가 작동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혹시 그 때까지 써 놓은 판결이 자동저장 되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법원의 모든 업무가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금년 1월 25일 경 “인터넷대란”이라고 불렸던 인터넷마비사태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접속에 문제가 발생한 것만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으며, 뉴스에서는 이를 톱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저만해도 다음 날 볼 영화를 예매하려고 영화관 홈페이지에 접속하려고 하니 접속이 되지 않아 결국 다음 날 직접 창구에 가서 그 긴 줄을 기다리며 표를 끊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상황을 보며 10여 년 전이라면 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고 하여 지금과 같은 정도의 사회적 이슈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은행 및 증권, 회사들이 쉬는 날이라 엄청난 사태를 불러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월요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은행전산망이 마비되어 돈을 입금할 수도, 출금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증권시장은 개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니 일대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조흥은행 파업사태 때만 해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전산실 마비사태였음을 돌이켜 볼 때 이제 우리 사회는 컴퓨터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겪을 때마다 가끔 우리가 컴퓨터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벌써 컴퓨터가 우리를 지배하는 건 아닌가 하는 황망한 생각도 듭니다. 영화 메트릭스 리로디드에서 한 상원의원이 주인공인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네오역을 맡았답니다^*^)에게 “너는 우리가 저 기계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만약 저 기계들의 작동을 정지시킨다면 물도 공급되지 않을 것이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암흑과 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 기계의 작동을 정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 갖고 우리가 저 기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뭐 이 정도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이미 우리는 컴퓨터 없이는 생활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 생활이 곤란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법원만 놓고 봐도 컴퓨터의 작동을 정지시킨다면 일단 코트넷 접속이 안 될 것이니 정보교환,메일 수신 및 발신이 불가능할 것이고, 판결작성도 일일이 손으로 써야 할 것이며, 판례나 문헌검색도 지금처럼 주제어,저자 등을 입력만 하면 검색이 되는 쉬운 방법으로는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조만간 실현될 우리 소송구조로, 앞으로는 변호사들의 소장 및 준비서면 접수가 지금과 같이 서면으로 법원에 직접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접수로 변경될 것이며, 판사들도 컴퓨터로 기록을 보게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아직도 주임이 그 무거운 기록을 수레에 실어 힘을 들여 판사실로 가지고 오고, 또 판사들은 몇 책씩 되는 두꺼운 기록을 캐비닛 가득 쌓아 두고 읽는다는 것은 구시대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토플시험도 컴퓨터로 보고 은행업무도 인터넷뱅킹으로 하는 시대니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추세에 따라 저희 법원도 더 정보화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장이나 준비서면을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것은 법원의 업무를 경감시키고 사법전산화에도 부합하는 좋은 제도일 것이지만, 양형의 통일을 위하여 한 피고인의 여러 가지 요인, 즉 A 피고인은 甲 죄를 범하였고, 乙 정황이 있으며, 丙과 같은 성품을 지녔다는 등등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양형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아무리 컴퓨터의 기능이 발전해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기계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으로 결정해야 할 일도 많을 테고, 은행업무나 전기,수도공급과는 달리 판사들이 하는 업무는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할 여지가 많을 테니까요.

 

3. 마치며

 

  정보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더구나 우리나라는 인터넷강국으로서, 법원에 있어서도 사법정보화는 앞으로 가장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위와 같은 생각에 컴퓨터에는 문외한인 제가 사법정보화연구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되었고 이는 우리 법원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인 것 같습니다. 컴퓨터도 인간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고, 인간도 컴퓨터의 작동을 정지시킨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에 빠질 테니, 결국 오늘날 인간과 컴퓨터는 서로 협조하며 공생해야하는 긴밀한 관계가 아닌가 생각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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